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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노곤한 몸을 따듯한 물에 충분히 불리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 아침!
아침에는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가족의 선택은 정갈한 물회를 먹는걸로 결정했다.
그냥 맛집도 아닌 그냥 상가에 있는 물회였는데, 오징어와 가자미를 깨끗한 수족관에 넣길래 우리 어머니는 이때다 싶어 아저씨에게 물어봤나보다
개장과 동시에 들이닥친 우리가족
"물회 되죠?" 하며 싱글싱글 웃는 우리 가족에 아저씨는 아마 상쾌한 아침을 맞지 않으셨을까?
가자미 물회 대령이요! 내 그릇엔 오징어가 유독 많은데 난 뼈있는 가자미를 좋아하지 않아서 오징어 물회를 특별히 달라고 했다. 아저씨의 표정은 살짝 유별난 애다 싶은 것 같더니만 물회를 군대서 처음 접한 탓도 있다. 부대에서 며칠간 대구 전 지역을 입체도면화 시키기 위해 파견나간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먹어본 물회는 내겐 조금 안맞았다. 대대장님과 홀로 동석식사하자니 참 민망하기도 했고, 뼈를 씹어먹어야 한다는게 일단 안 맞아서 물회는 조금 피했는데 여기서 부모님껄 살짝 집어먹으니 진작에 보통으로 먹을껄 싶었다. 깔끔한게 밥까지 말아먹으니 더 맛있고 사장님이 주신 소면을 넣어 먹으니 더 맛있더라.
난 참 음식 먹을 줄 모르는 것 같아.
오늘의 일정은 정동진으로 향해서 다시 양양쪽으로 올라오는 코스다. 정동진을 살짝 들렀다가 강릉 초당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양양 법수치 계곡으로 오면 정말 깔끔할 것 같았다.
가는 동안의 날씨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비가 내리기도 하다가 멈췄다가 이내 맑아지기도 하는 신기한 날씨. 분명 휴가철인데 왜 이렇게 피서객이 없을까, 날씨 탓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어제 찜질방에서 뉴스를 봤는데 30%가량 피서객이 줄었단다.
아무래도 저가항공사들이 많아져서 해외나 제주로 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랬을거라고 지레 짐작해본다.
여전히 정동진으로 향하는 곳에는 군 관련 시설물이 많았다.
이윽고 도착한 정동진역. 예전에 비해 정말 달라진건 별로 없었다.
일전에도 몇 번 개인적으로 찾아 온 정동진이라 그런지 입장권을 구입하고 들어오세요라는 팻말을 보고 '핏'하고 웃었지만 정당하게 가족 명수대로 계산해서 들어갔다. 사실, 정동진역으로 들어오는 방법이 아닌 해수욕장으로 들어오는 방법, 일명 개구멍 방법이 있어서 사실 필요는 없지만. 게다가 정동진역 안에 오래 있을것도 아니었기에 살짝 돌아서 들어갈까 혹했던것도 사실이다. 기왕 저렇게 돈을 받는거라면 확실히 운영하면 좋겠는데..
뭔가 어중간해서 돈을 내고 들어가서 좀 억울할 것 같긴 하다
늘상 하는 코스인 정동진에서 사진찍기, 그리고 인근 해수욕장에 발을 담구는 것.
그러나 정작 뿌듯하고 새로운 모습이었던건 여태 별 말이 없던 아버지가 어린 아이처럼 해수욕장에 발을 담그고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옷 생각하지 말고 즐기려면 제대로 즐기라는 말에 아예 풍덩 들어가신 모습이 속으로는 유쾌하고 재밌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휴가도 참여 못했고 항상 내 할일이 바쁘다며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아버지도 50이 넘으셨고 머리에 흰머리도 하나씩 늘어나며 요즘은 섬에 가고 싶다는 말을 줄 곧 하신다.
앞으로는 정말 부모님 여행을 잘 따라다니고 여행도 보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강철 로봇같은 아버지. 지금은 영웅이라기 보단 힘겨운 우리시대의 그저 가장일 뿐.
하긴 예전에 아버지가 해수욕장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버지와 같이 간 여행중 국민학교 1학년 시절에 갔던 바다에서 그랬다. 그때도 속초였는데,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마지막 여행은 초등학교 4학년때 경주가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정동진 덕에 여기까지 와서 많은 생각을 하고 간다.
의외로 물도 많이 깨끗했다. 속초보다도 훨씬 깨끗해서 놀라울 정도였으니까.
정동진 해수욕장을 지나 모래시계 공원에서 발을 씻고 다시 강릉으로 향한다. 모레시계 공원도 그렇지만 정동진의 모든게 2005년의 그 당시와 많이 닮아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때보다 사람이 좀 더 많아 졌다는 것 뿐.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아니라 약간은 건조한 바람이라는 것 빼곤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내 철없던 시절의 구석진 기억이다.
강릉으로 올라와 들린 곳은 그 기억속에 자리잡은 초당 두부마을이다. 두부마을에 처음 왔을때 늦은 저녁이라 길까지 잃어 두부는 먹지도 못하고 헤메였었는데, 이렇게 밝을 때 와보니 그때의 모습하고는 또 판이하게 다르다.
이 곳에서 정갈하고 간단하기로 소문난 할머니 손두부 집으로 향했다. 사실 이 부근에 있는 모든 두부집이 다 맛있다고 한다.
깔끔한 가격에 간수로만 간을 맞추었다는 두부맛은 아버지가 옛날 어렸을 때 먹었던 두부맛과 비슷하다며 너무 만족해하셨다. 분명 많아보이지는 않은 구성이었는데 김치하며 두부는 너무 깔끔한 맛이었고 같이 나오는 비지맛이 아주 기가막혔다. 우리 방에는 근처에서 오신 할아버지 한분이 홀로 두부를 드시러 오셨는데 맛있으니까 혼자서 종종 이 맛을 보기 위해서 오시는구나 싶었다. 그 곳에서 서빙하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청년은 보아하니 이 집의 손자인 것 같았는데 착실하게 메뉴를 선정해주고 설명해주어 고마웠다. 역시 사람은 살아오면서 성격에 맞게 인상이 변한다고 하는데 딱 이 청년은 그 인상을 보자마자 성품을 알아볼 수 있었다.
초당두부를 정갈하게 먹고 나와 근처 이마트에서 소세지하며 삼겹살하며 찬거리를 듬뿍사서 마지막 목적지인 양양 법수치계곡으로 향한다.
법수치 계곡은 산 골짜기 골짜기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하는데 주변 풍경하며 물이 깨끗하고 물고기가 많아 어성전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양양 하조대에서 약 30분가량을 더 들어가야 하니 얼마나 깊은 곳에 위치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사실 이곳을 선정하게 된 배경은, 원래 오대산 소금강을 가려했는데 눈 여겨 봐놨던 숙소가 꽉차서 대체할 곳을 물색하던 중 발견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워낙 산을 좋아하셔서 첩첩 산중을 맘에 들어하실 것 같아서였는데, 처음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너무 멋진 풍경이라며 감탄하시더니 계곡을 보며 흠뻑 만족하셨다.
조금 아쉬운점은 약간 수량이 풍부한 날이 아닌 점이 있지만, 물에 들어가보니 꽤나 깨끗하고 시원했다. 게다가 우리가 잡은 펜션은 전망도 좋고 조그마한 폭포도 있어서 운치 있었다.
법수치 계곡에 숙소를 잡을 거라면 최상류나 중상류 사이에 잡으면 좋을 것 같다.
직접 들러본 결과 괜찮았던 숙소 몇 군데를 추천하자면
우리가 묵었던 산야초산장, 흐르는 강물처럼 펜션, 최상류에 위치한 전망좋은방, 연어의 꿈 정도다
우리가 묵었던 산장에서 내려보면 바로 보이는 조그마한 폭포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조망장소
짐을 정리하고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러 나가 온 가족이 재밌게 놀았다. 너무 더운 날씨도 아니어서 선선한 상태에서 물놀이를 즐기니 이보다 즐거울 수 있을까? 인근에 어떤 학생들이 물놀이를 왔는데 한 학생이 계곡에 안경을 빠뜨려 열심히 찾길래 물 속에 워낙 익숙한 내가 물 속을 찾아 안경을 찾아주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법수치리 자체가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환경적인 측면도 생각해야한다. 피서객들이 많아지면서 쓰레기가 감당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다행이 법수치로 들어올때 입장료(환경보호 명목)으로 어느정도의 금액을 받는다. 그정도로 이곳이 깨끗한 상태로 남으면 좋을텐데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 들어오던 몇몇 무질서 하게 주차된 차량들과 낚시꾼들을 보면 이 곳의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왠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새 한잔 두잔하던 바베큐파티는 가족에 대한 진중한 얘기와 이곳에 대한 예찬, 그리고 앞으로 이런시간을 많이 갖자는 말을 잔에다 털어넣어 마시면서 오랜시간을 보냈다.
아, 가족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새삼 다시 느끼는 고마운 순간이었다.
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이런시간 자주 가져야겠다 또 마음을 먹는다.
그나저나, 소세지를 구어먹으니 이렇게 맛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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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의 끄트머리, 4월에 제대하고 나서 부모님이 산뜻한 제안을 하나 하셨다.
"너, 관광학과니까 가이드나 함 받아보자. 가족 여름휴가 계획은 니가 다 짜보거라"
안그래도 여름휴가 계획에 대해서 말을 꺼내려 했었는데, 부모님이 선수쳐주셔서 생색도 못내고... 에잉, 아무튼 그렇게 해서 계곡도 산도 바다도 갈 수 있는 강릉권역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권유에 여행계획을 짜다가 보니 노하우까지 덤으로 생겨 포스팅을 했더니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었다
( http://olpost.com/v/167452 여름휴가계획 다 알려주마)
최근 경부고속도로 일부구간의 표지판 디자인이 바뀌었다.
예전보다 더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다. 폰트는 윤고딕 500시리즈 정도 되려나?
일단,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해보기로 했다. 교통정보 어플리케이션으로 고속도로 상황을 보니 꽤나 수월한 것으로 되있으나 문막휴게소까지 4km 정도는 정체로 되있다. 휴가철인데도 불구하고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정도다.
다행이도 날씨도 괜찮은 편이었다. 전날에는 그렇게 구름이 잔뜩 끼어있더니 오늘은 비교적 화창한 날씨. 그래서 몸과 마음도 설렌채 그렇게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이번 휴가의 일정은 이렇게 짰다.
1일차 (대관령 삼양목장(시간과 날씨를 봐서 유동적으로) - 속초(대포항) - 속초(찜질방)
2일차 (정동진 - 강릉 - 양양 법수치계곡)
3일차 (양양 법수치계곡 - 대관령 삼양목장(유동적이기 때문에 빈 공간으로))
2일차는 다소 타이트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일정은 꽤 널널한 편이다. 2일차에 있는 법수치계곡은 장소 선정 후 트위터에서 직접 가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 죽여주죠~"
라는 말 한마디에, 선정 보류는 곧바로 확정이 되었다.
영동고속도로를 가는 내내 차창밖의 하얀구름아래 옹기종기 지나는 차량들을 보면서 잠시 행복감에 젖어있다가, 휴게소 하나 둘 지나치면서 점점 휴게소를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괜찮겠지 괜찮겠지 되뇌이다 화장실 타이밍을 놓쳐버려 절정에 다다르는 사태가 붉어졌다.
참, 웃긴게 그 와중에도 트위터로 상황을 전했다
"....큰일났어요. 용변이 급한데 휴게소까지 25키로 남았어요"
바로 답멘션이 날라왔다
"큰거에요 작은거에요?"
내가 답했다.
"작...은거에요...근데.... 신나게 25km를 달려도 30분은 걸리는데 차...차가 막혀요"
절망적인 답멘션
"그럼... 싸서 말리세요"
항상 왜 급한일이 생기면 나에겐 위기가 찾아올까? 차는 계속 막히고 문을 열어 노상XX라도 할까 선택에 기로에 놓였으나, 다행이도 20분쯤이 지나 초절정에 달했을 때 모세의 기적처럼 차들이 정체에서 풀려나게 되어 일을 볼 수 있었다.
할렐루야! 문막 휴게소!!!
나에게 광명을 찾게 해준 곳은 문막휴게소. 화장실을 가기위해 화장실 위치 쯤 되는 휴게소 오른편에 내렸는데, 화장실은 왼쪽 끝에 있다. (이건 신의 장난인가..)
아무튼 화장실에서 모든 체증을 다 씻어버리고 시간이 벌써 늦은 오후가 되어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때문에 그 다음 일정인 대관령은 막날로 미루었다.
그간 돈까쓰를 먹어보지 않아서, 오랜만에 시켰는데 생각보다 휴게소 치곤 맛있네! 앞으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면 문막 휴게소로 갈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는 항상 추풍령이나 금강휴게소를 들리곤 했는데,
문막 휴게소가 원주쯤에 있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강릉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릉의 날씨는 내륙의 날씨와 다르게 푸르렀고, 운치있었다. 갑자기 2005년에 홀로 강릉 왔을 때가 생각나네.
구름이 빨리 지나가는 걸로 봐서는 날씨는 유동적인 것 같다. 강릉에서 양양 하조대 쪽으로 향하는 신 동해 고속도로를 타니 왼편으로 펼쳐지는 대관령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다. 오른쪽을 보면 푸르기 그지 없는데 말이다.
부모님은 도로가 너무 좋다면서 신나셨다. 신 동해 고속도로는 속칭 신 동해 아우토반이라고 불린다는데, 막힘없이 좋은 길이라 길이 끝나는 하조대까지는 무리 없이 닿을 수 있었다.
양양을 빠져나와 다시 국도를 이용해서 속초로, 속초에서 미리 봐둔 찜질방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항구에서 회를 먹게되면 약주를 걸치게 될 것이고, 주차비도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어차피 이용할 찜질방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이동하면 훨씬 경제적일 것 같아서였다.
역시 예상대로 찜질방의 주차장은 생각보다 너무 넓었고, 우리가 가려는 대포항까지의 거리는 택시로 기본요금 쯤 되는 거리였다.
바로 건너편에 이마트도 있는데다가 속초해수욕장에서 찜질방까지 거리가 10분정도 걸리는 지라 위치상으로도 너무나 적당했다.
이마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대포항으로 향하던 도중, 택시기사 아저씨는 대포항보다는 외옹치항이 값이 더 싸고 맛있다며 권유하셨다. 워낙 난 이 곳을 많이 찾아와서인지 모종의 브로커식의 권유로 받아들였는데 부모님은 외옹치로 향하기를 바라셔서 외옹치로 일단 향했다.
그러나, 외옹치 항의 회는 생각보다 비싸긴 했다. 회의 질이나 양 면으로는 동명항 부근이 제일 좋다고 하는데, 외옹치와 대포항은 사람이 너무 많아져 예전 같은 인심을 잃은지 오래라고...
그래도 항구의 분위기는 좋았다. 더더군다나 주차도 무료로 할 수 있어 잠깐 대포항으로 건너갔다가 와도 무방할 거리였다. (걸어서 5분 소요) 어쨌든 이곳까지 왔으니 회를 한점 먹고 가기로 했다.
그래도 회는 싱싱하고 맛있었다. 서비스도 괜찮고. 하지만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철저한 사전조사가 아니었다면 조금은 낭패보기 쉬운 구조였지 싶다.
외옹치항을 지나 5분만 걸어가면 바로 나오는 대포항. 대포항으로 향하며 보이는 외옹치항은 작고 아담한 느낌이다. 그에 반해 도착한 대포항은 부산의 자갈치 시장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대포항은 사실 회를 먹으러 간것이 아닌, 새우튀김을 맛보기 위해서 찾았던 곳이다. 분명 대포항에 대한 안좋은 소문 좋은 소문 다 듣고 가서 무덤덤했는데 생각보다 관광객이 적지는 않다. 회를 먹으려면 저 위에 있는 영생호가 그나마 저렴하고 인심이 좋다고 익히 들었으니 한번 검색해보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대포항의 큰 장점은 회를 먹을때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사실 횟감 부분에 있어선 잘 모르겠다. 우리 가족이 여기서 제일 만족했던 것은 반건조 오징어를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것과 새우튀김일 뿐이다.
역시나 새우튀김은 그 많은 곳중에서도 이곳이 제일 사람도 많고 유명했다. 물론 다른집도 새우튀김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많은 집에서 튀김을 먹어야 그나마 신선하다. 계속해서 튀겨내기 때문이다. 분명 다른 곳은 눅눅해진걸 다시 튀기곤 할 것이 분명하다.
(http://olpost.com/v/331962 속초 대포항 맛집, 소라엄마튀김) 을 참고해보자.
그렇게 소라엄마튀김을 포장해서 인근에 있는 속초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분명 7월 마지막주의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피서객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새우튀김과 맥주를 들이키고 동생은 물놀이에 정신이 없다.
아, 나도 마음을 비우고 저렇게 물장구 칠때가 언제인가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해봤다.
속초해수욕장을 나서서 다시 찜질방에 돌아와 노곤한 우리가족은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한껏 풀어댔다. 첫 숙소를 저렴하게 찜질방으로 선택한 것도 참 괜찮은 것 같다. 도시에 있는데다 관광지랑 멀지도 않고, 찜질방에선 청초호 전망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야경도 멋지고 넓고 좋았다. 밤에 왠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뭔가 했더니 중국인 단체관광객도 묵으러 오기까지.
오랜만의 강릉여행이라 그런지 마음이 새롭다. 꼭 그날의 행복이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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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1. 속초부근에서 회를 먹으려고 하시는 분들이라면 동명항 > 외옹치항 > 대포항 순이다.
굳이 대포항에 가야한다면 '영생호'의 평판이 그나마 좋다.
2. 속초 시내에 찜질방을 부대시설, 위치면으로 판단한다면 속초 해수피아가 제일 좋다
7000원이고, KT회원이면 반값 할인이 된다. (SHOW)
이마트 걸어서 3분거리, 해수욕장 걸어서 10분거리, 대포항까지 걸으면 40분정도.
3. 강릉권역을 여행할 시 빠르게 이동하고 싶다면 신 동해 고속도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고속도로는 양양 하조대까지 이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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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한창 한파가 채 가시지 않았을 그 때,
마지막 정기휴가를 나와 무작정 군산으로 향했다.
그냥 아무 이유는 없었다. 괜히 예전에 대관령을 무작정 찾았을 때 처럼 무한한 자유를 한번 느끼고 싶었다랄까.
그 흔한 맛집도, 유적도 그냥 발길이 닿는데로 다니기로 하고 군산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군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진기도 없이 무작정 가려했지만 의미 있게 벌써 5년이 넘어버린 내 디카 캐논 파워샷 S70을 꺼내들고 2005년의 그때처럼 무작정 걸어보는 거다.
소소한 기쁨을 누리면서.
군산으로 가는 도중 천안을 지나 홍성쯤으로 접어들며 차창밖에는 그렇게도 넘쳐나던 고층건물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오직 남은건 낮은 건물과 연세가 되신 노인 분들, 그리고 끝없이 삶을 일궈내고 있는 논밭과 드문드문 보이는 산 뿐이었다. 철로는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여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엔 군산이 있었다.
군산에 도착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금강 하구둑 위를 지나니 새로지은 역사인 군산역이 보였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제 군산도 많이 변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앞옆으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과 계획되어 잘 닦여진 도로는 물류항만도시인 군산의 도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옛 군산역인 군산 화물역
한동안은 많은 화물과 사람을 나르고, 만남과 만남을 대변했을 옛 군산역은 이제 한켠으로 조심히 웅크려 들어갔다. 이제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곳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시장분들을 보니 마음속 한켠의 추억을 묻어 날리는 담배연기 같았다.
화물역의 근처에는 종합시장이 위치해있다. 많은 고기들과 떡들, 간단한 주전부리를 팔고 있는 이곳 또한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게 된 것 같다. 군산역이 새로 짓기 전에는 분명 이곳에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보통 어른들은 하나의 길에서 여럿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역을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앞의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거나 주전부리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왠지 모르게 꼭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다.
그랬으니, 참새가 방앗간 그냥 스치지 못하듯 알수없는 이끌림에 시장으로 들었고 그 시장에서 복잡함 속에 오고가는 인심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웃음으로 행복으로 보냈으리라.
그렇게 시장을 나서서 한 5분만 걸어가면 군산에서 유명하다는 '복성루'라는 짬뽕집이 있다. 전국에서 온다는 짬뽕집. 사실 큰 계획을 세우고 와서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군산에 대한 이야기는 줄곧 들어온적이 있었다. 내 주위의 군산사람이 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항상 그네들의 인생 무용담을 들으면 등장했던 이 짬뽕집이 군산 사람들한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궁금해서였다.
그렇게 들어간 복성루는 이미 맛집의 대열에 올라있었다. 사람들은 많았고 나처럼 처음먹으러 온사람도 대부분이었으니 줄이 긴건 기본이었다. 혼자 온 나는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모르는 사람과 맞대어 앉아 가득담긴 짬뽕 한그릇을 먹었다.
사실 별다를 건 없었다. 다만 짬뽕그릇에 가득담긴 인심 그리고 쉴새 없이 나르는 쟁반들이 뭔가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을 보며 먹는 짜릿함! 분명 우리는 서로 말을 걸고 싶었겠지만 요즘 우리 삶은 지쳐있기 때문에 서로를 간섭하기 싫어하는 듯한 눈빛으로 오직 나에게만 집중한다.
왜, 이 짬뽕집은 장사가 이렇게 잘 되면서 점포를 늘리지 않고 그자리에서 그 좁은 공간에서 짬뽕을 만들어낼까. 게다가 재료가 다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앵간한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을 법도 했다. 무엇인지 정확한 해답은 얻지 못했지만 아마도 외지인을 많이 반기는 것 보다는 이곳을 추억해서 찾아오는 군산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짬뽕맛도 맛이지만 이곳의 추억을 맛보러 오는 경우도 분명 있을거다.
어쨌든 나에게는 여태 먹어본 짬뽕중에는 제일 맛이 있었다. 혼자 다 먹지 못할정도로 양도 많았고 빠른 회전율 덕에 오래 앉아서 여유를 즐기며 먹을 수는 없었던데다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위생적인 문제도 사실 좋지 않다. 엄지손가락이 풍덩 빠진채로 그릇을 옮겨오니까.
그러나, 왤까 이곳을 맛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것 조차도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기 때문일거다.
짬뽕을 먹고 다시 군산의 중심이라는 중앙로쪽으로 발을 옮기며 조금더 골목 구석구석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일단 아까 화물역에서 짬뽕집으로 건너오던 중 마주했던 골목들이 인상에 깊어 다시 그곳을 찾아 골목 골목을 누볐다.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만 골목의 사소한 부분까지 통찰있게 바라보면 옛 숨결이 조금씩 느껴지는 건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골목에 위치한 목욕탕들은 줄지어 일렬로 헤쳐 모여있었다. 타일도 분위기도 딱 80년대의 느낌이 나는 곳, 굳이 들어가보지 않아도 그 느낌은 짐작이 간다. 87년생 주제에 뭘 알겠나 싶지만 어렸을때 줄곳 부모님이 데려갔던 목욕탕도 이런 느낌이었다. 타일이 무성한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부모님들은 평상에 아빠다리로 걸터앉아 서로의 인생사를 풀어내는데 여념이 없었고 나는 보조의자 위에 올라앉아 이발을 했다.
아저씨는 이발하면서 어린놈이 찡얼대지도 않네 착하다며 칭찬을 했고 나는 어린마음에 더 찡얼대지 않기 위해서 괜한 자존심을 발동했다. 그리고 노란 백열구 밑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맥콜을 마시는 청량감은 지금의 찜질방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추억의 무언가였다. 항상 새벽에 목욕을 다녔기 때문에 목욕을 하고 나와 젖은 머리로 골목을 누비는 시원함은 아직도 생각이 날 정도로 그렇게 골목과 목욕탕을 좋아했나보다.
목욕탕 골목을 지나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군산의 번화가인 중앙로가 나온다. 이 쯤되니 어디서 전화가 오는데 전화상에 들려오는 목소리 하며 찍힌 번호를 보니 분명 부대에서 전화가 온게 확실했다. 바로 내 차기 후임 분대장이자 부대에서 날 제일 잘 따랐던 정호. 하도 내가 휴가나가기 전 혼자서 군산으로 향한다고 해둔 탓인지 군산은 어떠냐며 안부전화를 해왔다.
그리고는 부산 사람인 정호에게 말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옛 모습을 간직한 너의 부산 같은 느낌일꺼야"
이 말 이상으로는 더 풀어낼 수 없었다. 부산은 부산이지만 너의 어렸을 적 추억이 남아있는 부산이라는 말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이 됬을런지 궁금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발을 옮기니 더 골목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어느정도 걸었더니 닿았던 곳은 군산 해망동.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있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일본식 가옥이 군데군데 있다.
계획 없이 지도 한장 들고 오지 않고 왔던 터라 골목 사이사이를 헤메이다시피 누빈다. 그렇게 누비다 보면 빨래를 너는 아주머니 개와 산책을 하는 꼬마, 태권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학생 많은 사람들이 골목 골목에 존재감을 불어넣는다.
월명공원에는 흥천사를 비롯해 애국지사 동상과 해병대의 이리지구 전적비가 있다.
일단 길을 아려면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동네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주위분들에게 물어보니 딱 좋은 곳이 있는데 월명공원이라는 곳이었다. 일제가 중앙로와 해망동을 잇기 위해 만들었고 한국전쟁 당시엔 북한군이 연합군의 공군폭격을 피하기 위해 있었던 해망굴의 바로 위에 위치한 월명공원은 군산민들이 즐겨찾는 산책 코스요 넓은 군산을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중간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조금 쉬고 있다가 이곳에는 어떤걸 보면 좋을까 해서 내 뒤에서 쉬고 있는 노부부에게 여쭤봤다.
"죄송한데요 이곳 근처에 일본식 가옥도 많고 볼게 많다고 하는데 어디를 가면 잘갔다 왔다고 소문날까요?"
월명공원에서 바라 본 풍경. 저 멀리엔 장항제련소와 한솔제지 공장이 위치해있다.
그렇게 물었을때 사실 노부부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럼 잠깐만 이리와봐요"
예상치 못한 대답. 노부부는 제일 높은 곳으로 날 데리고 올랐다. 월명공원의 전망대 같은 흰색 건물 위. 그리고는 해망동 부근을 손으로 짚어주시면서 가면 괜찮은 곳과 동선까지 세세히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덤으로 군산에 대한 역사까지. 게다가 알고 보니 그분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것.
참 사람운도 이렇게 좋을 수는 없었다. 마치 동네 어르신에게 흥미로운 동네 전설을 듣는 것 처럼 일제시대때는 이곳이 어땠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다다미 방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장 30분간의 주옥같은 강의와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났던 군산민들은 모두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자기가 사는 곳에 자부심이 있고 잊지 않고 있다는 건 그만큼의 매력이 이곳에 있기 때문 아닐까.
"너네 동네 뭐 볼 거 있어?"
"아니 전혀 없어"
라고 말한다면, 자기가 사는 터전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이거나 눈씻고 찾아봐도 정말 갈데가 없거나 둘중에 하나지만, 요즘 그 자부심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은 한창 세계2차대전이 발발할 일제치하 당시 군량미를 수탈하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었던 곳이고, 그만큼 일본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당시의 은행들이라던지 부두라던지 일제시대 건물이 많이 남아있음은 물론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 일제시대 건물을 개조해서 살고 있다. 6.25 전후로 피난민이 이곳에 많이 모여들었던 이유도 있다. 노부부의 말을 인용하자면 부두쪽으로 나갈수록 다다미 방이 많은데, 그 다다미 방이 하나의 방이 아니라 집 하나에 가구가 나눠 쓰는 장옥 양식(일명 나가야집)이라 한쪽에서 뒤척이면 다른쪽에서 알 수 있을정도로 일체형 구조의 집들이 많으며, 그런 양식의 건물들은 해망동에 많이 몰려있으니 유심히 보면 일본식 가옥을 많이 볼 수 있을거라고 했다.
노부부가 짚어준 동선은 월명공원 우측으로 내려가 히로쓰가옥을 지나 동국사를 보고 다시 다른편 골목을 지나 뜬다리 부두 쪽을 보면 얼추 시간이 맞을거라고 해서 일단은 동국사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이 되었고 맘 속 깊이 군산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골목 골목에는 약간은 이질적인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띈다. 그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히로쓰 가옥이다. 내가 알고 있는 군산 출신 형의 친구가 여기에 살았다던데,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있다. 일본 가옥이 필요한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복원 공사중에 있다.
히로쓰 가옥을 등지고 조금만 나오면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가 나온다. 일제시대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국사.
이전에는 금강선사로 불렸던 일본식 사찰, 1877년 메이지천황, 그리고 정한론이 대두될 당시 일본의 요청에 의해 들어와서 일본인 스님에 의해 창건, 운영까지 되었던 곳이라 일본식 정원이라던지 일본 사찰의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일제시대의 잔재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곳 해망동, 월명동, 금광동 일대에는 일제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굳이 비교를 하자치면 예전에 갔던 일본여행의 요코하마가 떠오른다. 요코하마도 개항이 이루어졌던 동네라 외국인 묘지라던지 가옥이 많았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생활 깊숙히 있지만 관광지로 이용하지 않았고 요코하마는 철저히 관광지화를 시켰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에겐 일제시대가 뼈아픈 역사이기 때문일까, 이곳은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되지는 않았다 다만 흔적만 남아있을 뿐. 아마도 이곳 주민들의 입장으로 봤을때 개발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이곳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살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도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군산내항쪽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장기(나가사키) 18은행, 최근엔 대한통운이 사용했다던데, 이곳 또한 일제가 수탈의 목적으로 설립한 곳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구 조선은행 건물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 유흥업소 건물로 쓰였던 데다가 여러차례의 화재로 훼손이 심해져있다. 지금은 복원을 하고 있다는데, 복원중이라기엔 너무나 허술하다.
구 조선은행 건물 뒤로는 군산 내항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쭉 늘어선 철로는 아마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과 우리의 아픈 연결고리였을거다.
내항 곳곳에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쉽사리 끊지 못하는 여러 건물들이 보인다. 그 중에도 바로 군산 세관이 있었는데 1993년까지 사용이 되어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고 서울역 건물과 더불어 서양고전양식 3대 건축물로 손꼽힌다고 한다.

어쩐일인가 세관은 문이 닫혀있다. 오히려 반대편에 군산시립박물관 공사는 분주하고,
조금 걸어 군산 세관까지 갔건만 시간이 늦어서인지 아님, 관람 예약을 하지 않아서인지 문이 굳게 닫혀있는 세관건물. 하는 수 없이 다시 내항으로 돌아와 뜬다리 부두를 가봤다. 이 또한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군산 개항의 역사는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불운이겠지.
뜬다리 부두를 지나면 진포해양공원이 눈에 들어오는데, 전투기, 함정등 재밌는 볼거리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데다 문화해설을 해주는 여행안내소가 있어 여행을 온다면 이곳에서 부터 시작하면 편한 동선으로 여행 할 수 있을 듯 하다.
늦은 오후 다시 해망동으로 걷는 길은 약간 스산했다. 중간중간 보이는 수산시장은 새벽이 아니라 그런지 또한 스산했다. 언제부턴가 이 스산함을 벗삼아 걷기 시작했다.
새만금이 보이는 비응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해망동 언저리 어느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배차시간이 30분이나 되는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던 도중 내 옆에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시는 듯한 할머니 한분이 앉으셨다.
할머니는 조용히 있는 내게 넌지시 물어보셨다.
"학생은 여행왔는가벼?"
아무래도 신기했는 듯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할머니도 손녀가 캐나다에 갔는데 혼자 여행하는거 요즘 학생들은 참 안무서워한다며 대단하다 하신다. 당신은 심장이 떨려 못하겠다며,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내시며 내가 가는 비응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무슨 버스를 타면 되는지 세세하게 일러주신다. 그리곤 홀연히 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시고.
또 난 그 적막함을 느끼며 마주오는 버스를 잡아타고 비응항으로 간다.
비응항으로 향하는 길은 계속 이런식의 풍경을 보여준다. 끝이 없는 평야는 분명 갯벌이었을 터, 항구가 가까워지면 멀리 보이는 대규모 공장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날의 비응항은 안개가 자욱했다.
원래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서도 비응항의 시계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비응항에서 마주한 소소한 기억들은 잊지 못한다. 안개에 가려 어디까지 이어질까 알지 못하는 새만금 도로, 푸른 안개속에서도 조업을 하는 배들. 그리고 스산함이 감도는 항구의 풍경. 분명 항구는 새로 개발되어 깔끔한 모습을 갖고 있지만 이곳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그 많은 배들인 듯 싶다.
비응항의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나, 그리고 잠시 여행 온듯한 부부 한쌍은 그렇게 비응항을 기억하고 있겠지.
난 다시 고개를 돌려 군산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다.
그렇게 잠이 들고 눈을 뜨니 어느새 터미널을 지나고 있다.
무계획으로 군산에 와서 참 여러가지를 보고 간다. 그 유명한 빵집이라는 이성당도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고 철길마을은 알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생업과 삶을 조망해보고 싶진 않았다. 그건 왠지 훔쳐보는 것 같아서다. 게다가 군산엔 은파 관광지나 이영춘 가옥, 그리고 여러 코스로 이루어진 군산 구불길 등 볼 것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덜 했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아까의 복성루 맞은편에 위치한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난 다시 내 할일을 위해서 군산역으로 돌아간다.
군산역으로 돌아가 막상 기차를 타려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군산역에서 연결되는 구불길의 존재감때문일까, 마지막으로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구불길. 이 구불길의 코스는 군산을 올 때 장항과 연결해줬던 하구둑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논밭을 거닐다 보면 만나게 되는 금강.
금강에 걸터 앉아서 군산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생각 또 생각, 깨닳음 까진 아니지만 군산을 앉아서 정리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다시 군산역으로 돌아오며 지나게 되는 아까의 논과 밭.
군산의 끝과 시작을 길로써 시작하고 길로써 맺게 되는구나.
그렇게 군산의 무계획적인 방문은 어쩌면 여러가지를 본다는 여행의 측면에서는 미완성일수도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꽉 찬 여행이 되었다. 군산에서 본 여러사람들과 그들의 생각을 들어본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노력 자체도 쉽사리 드는 생각도 아니다. 다만 내가 혼자 여행을 했고 혼자 걷다보니 난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봤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외로움을 달랬던 것 같기도 하다.
군산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꽉 찬 여행으로 기억되는 걸로 봐서는
적어도 내겐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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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정하고 싶다면 산으로 떠나라(마무리) - 2번째 지리산 종주
3일차 지리산 종주 루트(장터목 - 중산리)
새벽 3:30분
결전의 시간 눈을 뜨자마자 친구의 무릎상태를 확인하고, 산장을 나서니 이미 모포를 쌓아놓는 창고 입구에는 한가득이 쌓여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벌써 출발한 것 같다.
밖을 나가보니 다들 장비를 챙기는데 여념이 없다.
자칫하면 늦을수도 있겠다 싶어 조금은 서두르기로 했다.
이게 무슨사진일까요? 밑에서 설명합니다(ㅎ)
밖을 나서니 온통 깜빡깜빡 거리는 정체모를 하이얀 불빛들이다.
산을 올라가자마자 친구에게 랜턴을 켜랬더니(정작 친구 한명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건전지가 부족한지 이건 뭐 비추는건지 마는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친구가 조금씩 뒤쳐져서 랜턴의 덕을 많이 보지 못하겠다. 다른 아저씨들을 보니 다들 머리에 머리띠처럼 하고 다니는데 우리는 뭐 늘 이렇다 하하. 친구는 처음부터 숟가락 젓가락도 하나 없더니... 그래도 이놈 신기한건 주위사람들한테 잘도 빌려서 쓴다.
저 위에 있는 사진은 바로 별을 찍으려던 사진.
그래, 그만큼 우리의 상황도 상황이었고 조그마한 컴팩트 디카로 안찍힐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진을 찍고 싶을만큼 너~~~~~~~무나도 별이 아름다웠다. 쉬는 도중에도 저 멀리 하늘엔 마치 나에게 떨어질것만 같은 별들. 그리고 은하수.. 마침 떨어져주는 별똥별들이 도시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아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별들이었다. 이 별들을 마지막으로 본게 지리산 화엄사에서 템플스테이 했을때 말곤 군생활에서도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다니 가슴이 벅찼다. 친구도 전방에서 보던 별빛이 이 정도라고 하며 또 마주하게 된걸 감사하고 또 감탄한다.
그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오늘 반드시 일출을 볼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기에도 충분했다.
랜턴은 점점점 희미해져만 가고 뒤를 돌아보니 많은 산행객들이 랜턴을 비추며 오고 있다. 온 세상은 캄캄하고 뒤를 돌아보니 산에 박힌 별처럼 하얀 불빛이 이동하고 있다. 다들 세석에서 우리보다 더 일찍 오고 있는 사람들일거다.
아 어떻게 한담? 랜턴은 자꾸 죽어만 가고, 친구는 다리의 휴유증에 많이 시달리는듯 했다. 그래도 30분만 더 힘내자고 했다. 사람이 정상에 많아지면 우리가 편히 일출을 감상할 수 없기에 조금만 참고 무리하자 했다. 우리의 마지막 보루는 그래!
앞사람 랜턴에 의지해보자.
앞사람과 찰싹 달라붙어 우리는 열심히 천왕봉을 향해 갔다. 2007년에 이곳을 오를때는 꽤나 밝을 때여서 고사목 지대라던지 천왕문이 보이면 감탄하고 그랬는데 이 모든 세상이 깜깜하다 보니 우리는 천왕문을 막상 마주해도 올라가기 바빴다.
천왕문을 통과하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5분을 열심히 올라갔을까.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것도 우리가 정상 TOP 10 안에 들었다. 정상에는 10명 남짓밖에 없고 다들 아직 올라오고 있어 자리잡기도 좋았고, 사진을 찍기도 편했다.
친구야 고생했어! 이제 일출만 기다리자!
일출을 기다리자. 친구의 셀카가 그때의 상황을 대변해주는듯. 솔직히
좀 추웠다.
뜬다 뜬다 뜬다!!!!!
떴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아버지는 다치지 않고 일하게, 어머니는 공인중개사 다시 공부해서 합격하게!, 여동생은 좋은 대학가게! 나는 내가 하는거 다 잘되게 해주시옵소서!!!'
완벽한 감동이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아침에 보는 저 능선들!! 캬!
일출 전!
일출 직전!
일출 후!
이건 완전한 감동이었다. 몇번을 와도 보지 못했던 일출인데, 올해는 정말 뭔가 잘 풀리겠다 하는 확신이 든다 더불어 내가 정하려던 것도 결국 이 일출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친구도 일출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겠지? 이게 어디야, 처녀산행인데 바로 일출을 봤잖아! 이게 다 친구를 잘 둔 덕분이지. 헤헤헤. 우리 둘다 3대가 덕을 쌓았나보다 천왕봉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데,
일출을 구경하고 나니 사람들은 서서히 하산하기 시작한다. 산에는 원래 미련이 없어야 하는 법. 친구와 이 느낌을 농축시켜서 간직하려면 질리려 할 즘 내려와야 한다. 산과 맛과 향은 그렇게 에스프레소 처럼 내 머리속에 저장되어졌다. 그리고 또 다짐한다 다시한번 오기로, 그때는 가을이 되려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건 끝까지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무릎의 특성상 오르는거보다 내려가는게 어려운 만큼 우리는 정말로 천천히 내려가기로 했다. 허나 역시 그 경사가 만만치 않았으니 조심 또 조심하며 내려온다. 친구나 나나 무릎은 헤질대로 헤졌는데 마음은 넉넉하다.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혼자 있을 시간을 주고 싶기도 하고 나에게도 필요한 듯 하여 각자 하산하기로 했다. 때론 산소리를 들으며 때론 이어폰을 꽃고 산책하듯이 하며 마지막 목적지인 중산리로 향했다.
하산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내려온다. 어제 만났던 그 분들은 더이상 만날 수 없었고 조금은 아쉬웠지만 건강하시라고 살짝 빌어도 보고 중산리에서 출발한 것 같은 사람에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격려도 해주며 산행을 하니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어디서 들려오는 대금 소리, 산에서 주고 받으며 어떤 아저씨 한분이 대금을 불고 계신다. 친구가 내려오려면 한참 멀기도 했고 법계사도 가까워 져 올 무렵 대금소리에 잠깐 잠이 든다.
친구가 하산하면서 날 발견했고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놨다.
그렇게 잠을 자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려댔다. 바로 친구의 전화
"니 잘 자고 있더라, 나 벌써 법계사까지 내려와서 물 마시고 있으니 어서 내려오시게"
이게 딱 현대판 토끼와 거북이 아닐까? 이 거북이 같은 놈, 결국은 날 추월했구나
법계사 아래 평상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나니 올라오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주말이라 그런지 다들 몸은 힘들겠지만 표정은 행복해보였다.
로터리 산장 헬기장, 우리가 저만큼 내려왔구나
계속해서 친구를 추월해 내려가다보니 이제 제법 아까보다는 녹음이 짙다. 거의 다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때 쯤, 계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계곡이 보인다는 것은 중산리까지 1km도 남지 않았다는 것, 계곡 물에 발을 담구고 잠시 쉬며 친구를 기다려본다.
이내 친구와 동행하던 분이 계곡에 자리잡았다. 그러면서 산 얘기 여행얘기 덤으로 초코바까지 얻어먹으면서 양껏 쉬었다. 우리가 쫄쫄 굶으며 하산한걸 친구가 말했는지 아주머니가 로터리 산장에서 같이 먹을걸 하고 아쉬워 하셨지만, 괜찮아요 아주머니 저흰 내려가서 고기 궈먹을꺼에요!
이제 약 1km 남았다. 열심히 가자. 우리의 길은 오른쪽으로 계곡이 나있고 다람쥐가 같이 동행한다. 천천히 걷고 걸어 11시쯤 되었을까 중산리 초입에 다다르게 되었다.
조금만 힘내 ! 다 왔다아아아
이제 다 왔다!!!!!!
"야 빨리 와 ! 다 왔어!!!"
"정말???우와아앜"
33.5km의 종주가 끝이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는 드디어 중산리에 도착했다. 중산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별로 없다. 물을 마시고 우리의 승리를 기념한 후 버스를 타러 1.5km 거리의 중산리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진주에 가서 고기를 양껏 궈먹자. 우리 안그래도 장터목에서 고기궈먹는 아저씨들 정말 부러워 했잖아!!
중산리는 완전 여름이다. 우리는 지리산 등반 기념 손수건을 사고 진주로 가기위해 5천 100원을 내고 진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시간은 맨 마지막에 첨부하기로 한다!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 산청부터 시작해 많은 곳을 지나간다. 사실..우린 버스에서 뻗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지리산과 헤어져야 할 시간, 진주 동해숯불갈비 집에서 9900원하는 고기부페와 소주로 등반성공을 자축하니 그 동안의 기억들, 굽이 굽이 흐르는 섬진강과 녹음이 짙었던 지리산이 아른아른 벌서 그리워져온다. 나는 약속이 있어 동서울로, 친구는 수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헤어지고 버스를 탔더니 좋은 기억들 때문에 히죽히죽 웃음이 나온다. 뭔가 마무리 짓고 결정할때는 항상 높은 곳을 찾게 되더라. 2005년의 대관령이 그랬고 2007년 전국일주의 마지막이었던 지리산도 마찬가지. 이번 지리산 산행도 전역후의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 새 시작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무언가 정할때 산으로 떠나라"였다. 충분하다. 많은 준비도 필요없다. 지리산은 당신을 폭 안아 줄 것이니까. 그리고 지리산의 맛과 향을 당신에게 아낌없이 선사할테니까 말이다.
마음이 심드렁하고 혼자 떠나 생각할 것이 필요하면 꼭 한번 떠나보라.
갔다오기 전과 갔다 온 후의 나는 확실히 많이 변해있을 것이니까.
주저하지 말고
떠나자. 지금 당장.
지리산 여행기를 봐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 어떻게 가슴이 많이 차오르셨는지요,
지금부터 쓰는 내용들은 저희가 했던 여행의 간략한 정보입니다. 모노트레블러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여행은 여러분이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지리산을 산행하는 대표적인 코스(이외도 많습니다, 이 코스를 역으로 이용가능)
1 - 화엄사 - 중산리 구간
* 저희가 산행했던 코스입니다. 천왕봉까지 비교적 완만합니다. 다만 중산리까지의
하산코스 경사가 급합니다
2 - 백무동 - 중산리 구간
* 백무동에서의 코스는 중간쯤입니다만, 중산리 구간은 경사가 급합니다.
3.- 화엄사 - 대원사 구간
* 완만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산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동으로 가는 코스도 있으니 아래 지도를 참조해주세요
지리산 대표 산장별 인기도와 식수공급에 대하여(1번 코스 위주로 설명합니다)
1. 노고단(예약 난이도 5위)
: 차가 다니는 최고 높이의 산장, 시설이 깨끗하고 밤열차를 타지 않은 산행객이면
많이 머물다 출발한다. (빈자리 많음)(식수 수급이 좋다)
2. 연하천(예약 난이도 4위)
: 아저씨가 살짝 불친절하고 수용능력도 적으며 시설도 좋지 않다. 다만 식수는 풍부한편
역산행자들이 많이 묵고 있어 벽소령 다음으로 예약이 꽉찬다
3. 벽소령(예약 난이도 2위)
: 2박 3일코스의 여행자가 대부분, 시설이 좋아 벽소호텔로 불리움.
다만 식수를 위해서는 100m를 내려가야 한다. 생각보다 많이 멀다
보름달이 이쁘다 해서 벽소명월이 유명하다
4. 세석(예약 난이도 3위)
: 1박 2일코스의 중간난이도 여행자가 대부분. 수용능력이 많아 가끔 빈자리도 나긴하지만
이곳도 예약 필수. 식수는 40m 쯤 아래에 있으며, 시설이 좋아 세석호텔로 불림
주위 풍경이 이쁨
일출을 보기위해선 적어도 새벽 1~2시엔 출발해야 한다.
5. 장터목(예약 난이도 1위)
: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서 묵는 사람이 대부분, 예약이 정말 어렵고, 사람이 많다.
식수는 50m를 내려가야 한다.
일출을 보기위해선 1시간 30분, 혹은 1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붐비지 않는다.
6. 로타리산장(예약 난이도 6위)
: 쉬어가는 여행자가 많음
예약시 팁,
1주일전에 간다고 하면 이미 예약이 끝나있다. 당일부터 15일 전 오전 10시에 예약을 받고
예약이 개시되면 거의 2초안에는 예약이 끝난다 보면 된다. 주말이면 더 심하다.
때문에 이미 만석인 상태는 대기가 가능할때 대기를 걸어놓고 그렇지 못하면 계속확인후
5,4,3일전을 노리면 자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 F5를 연타해보자
산장의 비용은 성수기 8000원, 비수기 7000원. 모포는 현장에서 1000원에 한장이다.
2장을 빌려서 하나는 모포를, 하나는 베게로 말아서 쓰자.
예약 못했을땐! 비박 밖에 방법이 없다.
다만 자리가 공석이 나면 노약자, 여자, 55세 이상 남자, 남자 순으로 자리 배정하니 참고!
잊지말자
연하천은 햇반을 사도 데워주지 않는다. 그리고 산장들의 라면과 버너등은 모두
값이 만만치 않고, 가스가 무겁다 싶으면 산장에 기부해도 된다.
산행시 일반적인 준비물
가방, 코펠, 버너(바람막이 있으면 최고), 3일치 식량(끓이거나 상하지 않는 것, 라면 필수!), 랜턴(필수), 등산용구들, 카메라, 응급약품들, 에어파스, 호루라기(곰 쫓아낼 용도), 1L 물통(식수 한번에 뜰때, 물마실때 용이), 선크림, 손수건, 소금, 칫솔(치약은 사용 불가), 비닐봉지(쓰레기용),클린물수건(얼굴 닦이 대용), 두루마리 휴지(응아 내릴때, 코펠 세척할때) 등등이다. 산장 내에선 취사 및 취식 금지. 절대 세제, 비누 사용 금지다. 술도 많이 먹지 않도록 한다. 삼겹살, 고기.......음 솔직히 좀 부러웠으니 담에는 싸가봐야겠다.
우리가 본 대박 음식들 BEST
- 삼겹살, 쌈, 족발(이건 어떻게 가지고 왔지?), 수육, 스시(-_-), 핸드드립 커피 등등
Q&A
1. 여자는 어떻게 해요?
- 혼자서 잘 오르시더라구요, 충분해요!
2. 첫 산행인데 걱정되요
- 첫 산행이시라면 2박 3일 코스 추천합니다. 역으로 산행하시면 자칫 질릴수도 있으니
성삼재부터 천천히 시작하세요
2박 3일 추천 코스 - 성삼재 - 벽소령(1박) - 장터목(1박) - 하산
1박 2일 추천코스 - 성삼재 - 세석(1박) - 하산(일출 놓칠수도 있음)
화엄사 출발은 새벽이라 경치구경은 힘듭니다. 버스에서 내려 화엄사 까지는 30분을
걸어야 하고 거기서 부터 노고단은 4~5시간 걸린답니다.
화엄사 코스는 되도록 여유있는 아침에 구경하면서 오르는게 즐겁습니다.
3. 기억에 많이 남는 산장을 댄다면?
- 벽소령, 세석, 장터목 다 요~
4. 씻는건 어떻게 해요?
- 산의 특성상 물을 펑펑 못쓰고 세제도 안되니 식수통 1L 큰거 준비해 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 왔다갔다 하시면서 물 안떠도 되어요~
5. 쓰레기는 어떻게 해요?
- 검은 비닐봉지 준비/수거해서 쓰레기를 다 가지고 하산하셔야 합니다.
6. 수저가 없어요! 젠장!
- 수저, 젓가락은 노고단 산장만 팔더군요 그 외에는 알아서 해결하셔야 합니다~
7. 하루만에 산타는 아저씨들은 대체 어떻게 오는거에요?
- 22시, 23:20분쯤에 서울이나 수원에서 기차타고 오셔서 버스 안타시구 택시 잡아
화엄사부터 타시거나 성삼재에서 대부분 출발하십니다.
8. 어떻게 해요 구례 도착했는데 (기차 이용안하고) 어떻게 자요~~~
- 구례에도 찜질방 있습니다. 터미널에서 걸어 5분거리 ㄱ자로 이동하심 있더라구요
거기서 주무시고 4시까지 터미널에 나오시면 탈 수 있습니다(3200원)
9. 구례구에서 출발 시간은 어떻게?
- 밑에 버스시간표의 4시 00라 되어있는 구례발은 구례터미널을 말합니다.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3:30분에 구례구에서 터미널까지 경유하고 산 올라가는
버스를 이용하세요 구례구 역 앞에 있습니다. 3:30분입니다.
10.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시크릿 코드는?
- 요즘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칠선계곡을 예약제로 입산허가한다고 하더라구요
백무동 근처인데 예약하고 가볼 만 한거 같아요!!
그리고 화엄사에서 노고단 가는 길 '금정암'이라는 암자가 아침에 운무가 깔려
정말 이쁩니다. 템플스테이 할때 스님이랑 아침에 올랐는데 최고에요!
버스 시간표
○ 중산리→진주시외버스터미널(5,100원, 1시간 10분)
06:30, 06:50, 07;15(반천), 07:30(거07:45), 08:50, 09:50, 11:00(거10:50),
11:50, 12:50, 13:50(거13:40), 14:50, 15:50, 17:05(거15:50), 17:50,
18:50(거18:40), 19:40 (서울이나 인천승객은 원지라는 곳에서 도중 하차하여 가도 됩니다)
시간은 항시 변경될 수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한번 더 확인! 진주터미널은 고속, 시외 잘 구분해서 타세요~!
* 주의! 필자처럼 절대 저런 복장으로 산행하지 말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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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정하고 싶다면 산으로 떠나라(산행편) - 2번째 지리산 종주
2일차 지리산 종주 루트(벽소령 - 세석 - 장터목)
어젯밤 개미와의 동거는 끝났다.
내 몸 구석구석 이곳저곳을 기어다니면서 열심히 괴롭혔는데 내가 반응이 없어서 그런지 깊은 새벽녘이 되자 조금은 심드렁해진것 같았다.
친구는 욱신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물어본다
"야 오늘은 어디까지 갓!"
"네~ 친구님! 오늘은 장터목까지 갑니다. 천천히 걸어가자구~~"라고........말은 하지만 워낙 빨리 걷는 날 지도 스스로 잘 알테니까 천천히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거라고 믿는다.
내 기억으론 2007년의 세석산행은 살짝 힘들었었는데 오르막 내리막을 쉴새 없는 것으로 모자라 아마 철제 계단이 더 많아서 였을꺼다.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오는데는
그놈의 토끼가 문제였고(얼마나 토끼봉를 원망했던지..), 세석까지의 코스는 그놈의 처녀가 문제다(처녀봉도 만만치 않은 존재) 내가 전날부터 처녀봉이 장난 아니었던걸로 기억한다고 했을때 친구의 반응은 오늘의 산행에서 왠지 모를 압박감에 첫걸음이 잘 안뗘졌을거다.
아침은 식단표에서 어제 먹었어야 했을 우동, 그것도 가쓰오 우동이다. 우리가 우동을 끓이자 주위의 시선이 몰리는 듯 했다. 이것이야 말로 일본식 된장질! 우리는 우동을 먹고나서 녹차를 양껏타서 힘들거라 예상하는 오늘의 산길에 건배한다.
일단 첫 출발은 산에게 미안하지만
카라로 시작했다. (블로그에서 특정가수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거론하다니! 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흑흑)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카라의 메들리는 우리의 첫 산행을 즐겁게 했다. 덕분에 친구와 나는 애지간한 거리는 카라의 효과 덕에 잘 오를 수 있었다. 4키로미터를 간것이 안 믿겨졌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카라의 메들리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문제의 처녀봉에 다다르고 있었다.
오늘의 점심은 처녀봉에서 먹어야 하므로, 자리를 잡아서 꿀맛같은 식사를 하려면 12시 전에는 도착해줘야한다. 하지만 처녀봉까지의 산행은 절경의 연속이어서 마음이라도 안정 되었지만 철제계단의 연속이다 보니 폭신폭신한 길이 아닌 딱딱한 곳을 디디는 무릎에 적지않은 무리가 가해졌다.
세석으로 향하는 길은 절경도 절경이지만 멋진 기암괴석들도 종종 눈에 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끝이 없는 철제계단
철제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내 마음은 약간은 심드렁해졌다. 이곳에 인위적인 철제계단을 놓으니 물론 산행을 하기엔 많이 편하겠지만, 자연을 거슬르는 것이라 결국은 일장일단이었다. 폭폭한 흙길의 산은 사람을 따스하게 안아주려 노력하는데 딱딱하기 그지없는 인위적인 길은 산이 우릴 밀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철제계단을 다 올라서 한 바위가 나와 잠시 쉬기로 했다. 우리가 쉬고 있으니 몇몇분들이 우리를 계속 지나가는데 대부분이 산장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아저씨가 우리 옆으로 쓱 지나가시길래 어디까지 가시냐 물어보니 오늘 하루에 종주를 끝낸다고 하신다. 우린 깜짝놀라 그럼 어디서 오셨냐니까 새벽에 성삼재에서 출발하셨단다. 이.럴.수.가 우리는 여길 2박 3일로 올라오는데도 이렇게 골골거리는데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래, 남자면 이해할 수 있어! 근데 다음에 오는 아줌마는 대체 뭐야!!?
홀로 폴폴 뛰어다니며 아저씨 뒤로 아줌마가 나타났다. 아줌마는 난 산행을 하루만에 주파해버리는데 자신이 소속한 산악회는 일정이 맞지 않는다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 해서 두고보자는 식으로 하루만에 주파해 버리시겠다고 했다. 근데 누가봐도 그 아주머니는 주파하고 말았을꺼다. 산을 타는게 아니라 흐르는 듯한 속도로 주파하셨으니까.
우리는 육포를 씹으면서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만날때마다 고소한 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에잇. 우리도 이렇게 있을 수 없지! 다시 걷자!
왠지 이사진을 보니까...
이때가 생각나는구나(2007년 산행때)
이제 이곳만 넘어가면 세석평전이다!
우리는 그렇게 처녀봉을 지나 기암괴석들을 돌고 도니 세석평전이 저만치 보이는 진달래 밭에 도착할 수 있었다. 5월의 진달래는 피고 지는 시기가 아니라 이곳에선 이제 피는 시기다. 3월 말, 혹은 4월 말까지도 눈 덮여있는 곳이 이곳이니까.
여름이 되면 저곳에 녹음이 짙게 베어든다(2007년 산행, 여름)
친구는 약간 뒤쳐져서 저만치서 먼저 따라오라고 하고 혼자 산행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 이유중 하나가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또 한가지의 이유는 이 광활하고 멋진 산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생각을 갖게 하려는 이유였다. 같이 있게되면 서로 배려하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까.
이 산에 온 목적이 뭔가?
뭔가 정하기 위해서 온게 아니었나? 친구는 앞으로 대학생활을 결산하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산행이었고 난 앞으로의 6개월을 어떻게 보낼지 기로에서 침을 퉤 뱉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속마음을 서로 알고 배려하기로 했다.
무사히 세석 대피소에 도착했다
"야! 조금만 힘내 거의 다왔어!!! 여기만 지나면 세석 대피소다!"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저 멀리서 뒤뚱뒤뚱 걸어온다. 뭔가 찡했지만 아직은 수고했다고 말해주기 일러 꾹 참았다. 우리는 세석 대피소에 도착해 신나게 라면을 끓였다.
다행히 자리를 잘 잡고 있어서 한 평상 자체를 우리 차지로 할 수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우리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따라오던 일행이 세석에 도착하면 자리를 주기 위함이었다.
"아저씨 아주머니랑, 그 아저씨 일행 올때가 되었는데" 하며 물을 끓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그 일행이 나타났다. 어제 우리랑 같이 벽소령에서 묵은 부부다.
그 부부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우리도 나중에 나이먹고 저렇게 다녀야 하는데..."하며 생각이 잠기게 할 만큼 롤모델 부부였는데 우리 평상에 자리가 남아 이쪽으로 오시라 했다.
잘생긴 학생들이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시면서 아주머니는 밥을 준비하시고 아저씨는 불을 준비하신다. 부부는 우리또래의 아들을 두었고 아주머니는 3달동안을 혼자 남미를 여행하신 대단하신 분, 이번여행은 그때 체력으로 금방 주파할수도 있었으나 지리산을 천천히 느껴보고 싶어서 2박 3일 종주를 선택했다고 하신다.
"근데 아주머니 혹시 우리랑 같이 묵었던 아저씨 2분 헐떡대는거 못 보셨어요? 분명 우리보다 빨리 출발했는데.." 하며 아저씨들의 근황을 묻자 이제 곧 도착할꺼라고 했다. 그말이 끝나자마 보이는 검은색 등산복 미확인 두물체, 땀에 흠뻑 젖어서 저멀리 도착한 아저씨 일행이 두리번 거리고 있다. "아저씨들! 수고하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지리산 이틀만에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고 오며 가며 많이들 친해졌다. 아저씨들은 "학생들 아까 갈때 우리가 샘물에서 쉬고 있으니까 어디서 막 카라노래가 나오는거야 그 있잖아 락큐빡세 그거랑 허니~허니~ 하는 노래 그거 들으니까 진짜 힘나더라, 이따가도 좀 부탁해~" 하며 여독을 푼다.
아저씨 일행과 부부는 오늘도 우리와 코스가 같다. 장터목까지의 코스인데 부부는 어쨌든 여기서 장터목은 어제의 연하천과 벽소령 거리와 비슷비슷하니까 천천히 세석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가겠다고 하시고 아저씨 일행은 일찍 출발해 그곳에서 쉬겠다고 하신다. 우리도 잠시 쉬고 일찍 출발해 천천히 가는 쪽을 택했다.
아름답게 잘 꾸며놓은 세석 대피소를 떠나 아래를 굽어보니 세석평전에 마치 심어져 있는 듯한 대피소가 참 아름다웠다.
"아저씨! 아주머니! 다들 이따가 봐요~~~"
세석평전도 이제 안녕~
멀어져가는 세석평전을 뒤로하고 우리가 마주한 곳은 몇몇 봉우리였다.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촛대봉은 세석평전에서 천왕봉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출의 차선책으로 촛대봉에서 보는 일출도 기가 막히다고 한다.
국립공원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촛대봉 근처에서 열심히 안테나 수신율을 보고 있었다
(힘드시겠다..여기까지 올라와서)
친구가 계속해서 뒤쳐지는 나머지 우리는 촛대봉에서 무한정 쉬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촛대봉을 지나고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짚어보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나 살짝 눈이 찌푸려지는 것은 많은 산악회가 왔다갔다 하면서 서로의 독사진을 찍겠다고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의 말도 없이 좀 비켜주세요 식의 막무가내 말로 몰아내듯 하니 입장이 좀 그랬다. DSLR을 부여잡고 추억을 담는것은 이해하지만 저 산악회 사람들은 산을 정복하려 온 것인가? 그저 높이 올라왔다는 그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 아마 그렇다면 지리산 종주라고 하기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지리산을 왜 종주하는가? 단순히 천왕봉을 올라 성취감을 맛보겠다면 백무동에서 올라와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로 가든 그 역으로 가든 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코스가 길든 짧든 어쨌든 산을 느끼는데는 차이가 없지만 저 분들은 그 기나긴 코스를 종.주 하시면서 산을 느끼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어보여 안타깝기만 했다.
에효 괜한 생각일까,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지...
아무튼 아주머니 산악회가 어서 내려가길 바라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난다. 여기서 장터목까지 가려면 적어도 오르막은 2번이요, 유격훈련 같이 밧줄을 잡고 올라서는게 몇번 있던걸로 아는데, 친구가 잘 버텨줄까 살짝은 걱정스럽다. 그래도 믿어본다. 친구는 전방 GOP에서 근무했던 애니까 일개 팔공산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한 내 체력보단 나을거다.(그러나 산행은 역시 체력보다 지구력, 그리고 요령이다..)
사진 뒷편으로 보이는 제일 높은 봉이 천왕봉이다 이곳에서는 장터목까지 보인다
촛대봉의 풍경
장터목으로 흐르는 길은 잘 다져져있다.
봉우리를 넘고 옆으로 감싸고 돌고 하다보니 이제 나도 다리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 장터목으로 흐르는 길은 완만한 평지와 암석길이 많아 완만한 곳에서는 편히 쉬어줘야 하고 완만한 곳에서는 관절을 잘 이용해 무리가 가지 않게 타야한다. 폴짝폴짝 가야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마지막 연하봉을 지나니 이제 장터목이 저 멀리 봉우리에 걸려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고지가 눈 앞에 있으니 오히려 힘이 든다. 걸으면 걸을수록 계속 닿을 수가 없으니. 친구와 나는 봉우리를 넘고 암석을 넘고 넘는데 나는 바짓 똥꾸멍 부분이 아주 심하게 민망하게 그리고 섹시하게 찢어져버렸고..(부욱~ 하고 소리나서 놀랬다!), 친구는 계속햇 뒤쳐진다. 결국 고지를 눈앞에 두고 한번 더 쉬기로 했다. 뭐 어쩌피 천천히 가기로 했으니깐.
쉬고 있는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전화하고 고등학교때 담임선생님(고등학교 졸업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과도 연락했다. 오늘이 5월 15일 스승의 날인데 우린 선생님 만나뵈러 가지 않고 여기있다니, 조금은 죄송하긴 했지만 우릴 이해해주실거다 3년동안 고등학교 내내 우리 담임선생님이었으니까 아주 잘 아시겠지 우리의 성향을. (동행한 친구도 고등학교 죽마고우다) 그리고 간만에 부대에도 연락해 내 근황을 알렸다.
다시 출발하고 머지않아 우리는 장터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우리가 아니구나.
나만.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는 중간에서 천천히 오라고 하고 먼저 내려왔다.
장터목에 들어서니 아까 세석에서 만난 모든 일행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쉬고 쉬는동안 우리르 앞질러 갔나보다.
"어 근데 왜 학생만 있어? 친구는?"
"친구 버리고 왔어요 하하하하"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
머지 않아 친구가 저 멀리서 온다.
'친구야 난 널 정말 버린게 아니야~~~ 흑흑'
"수고했다 임마!!"
이제 우리 모두 장터목까지는 무사히 왔다. 천왕봉까지는 적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남았으니 문제없다. 그저 에어졸을 열심히 뿌리며 여기까지 와준 친구가 고마울 뿐이다.
우리는 어제 벽소령에서 추위 떨며 먹는 김치찌게의 과오는 범하지 말자 하며 취사장에서 저녁을 빨리 해치우기로 했다(16:30분경이다) 원래는 밖에서 먹기로 했는데 벌레가 자꾸만 카미가제처럼 끓이는 물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괜한 추가 단백질 공급원이 될까, 취사장에서 어제의 김치찌게를 해먹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맛있어서 우리와 같이 왔던 아저씨 일행과, 부부에게 나누어 주었다.
"김치찌게를 일부러 넉넉히 끓였어요, 맛있을지 모르겠지만 드세요~" 하면서 물량공세를 했더니 아주머니는 맛있는 오이를, 아저씨 일행은 안주가 될만한 김을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안주삼아 소주를 한병씩 비웠다.
그러면서 우리네 옛날 고등학교 이야기도 하고 인생얘기도 하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장터목으로 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격려를 받았으며 온기를 느꼈다. 모르는 우리에게 초콜렛이며 오이며 많은 사람들이 건네주었고 그안에서 온기를 느낀것이었다. 이래서 산행은 제맛이다. 우리에게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홀연히 떠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은 어느새 다른 산행객에게 베풀고 있다. 어느새.
장터목에 계획없이 올라온 아주머니를 위해 대피소에서 잘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것과 잘될거라고 위안을 주는것 그것밖에 없었지만 우리도 그도 모두 온기를 느끼기엔 충분했을거다.
내일은 일출을 볼 수 있을까? 녹차를 마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듬성듬성 별이 보이고 아래에는 중산리가 멋지게 펼쳐져 있는 것으로 봐선 천왕봉은 기꺼이 정상을 품을 수 있게 해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내일 출발 시각은 새벽 3시 30분. 산악회가 동시에 올라가니 우리는 그보다 더 먼저 올라가기로 한다.
일출시각은 새벽 5시 25분이다.
세석 평전으로 가는 아름다운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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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정하고 싶다면 산으로 떠나라(산행편) - 2번째 지리산 종주
지리산 종주루트 1일차 (성삼재 - 연하천 - 벽소령)
아직은 어두운 저녁이다.
덜컹거리는 기차안 분명 조용하긴 한데 자리때문일까, 왜 이렇게 잠이 들기 힘든건지...
빛 때문일까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이것저것 친구와 군대에 있을때 이야기도 하고 맥주도 마셨건만 그 긴 말꼬리 레이스에 지쳤을텐데 새벽 2시가 되서도 여전히 눈은 말똥말똥하다.
이미 기차는 전북에 진입해있다. 익산을 지나고 어느새 곡성. 곡성이라면 벌써 섬진강이 시작되었다는 얘기일테고 조금 있으면 구례구에 도착한다는 이야긴데, 시계를 보니 도착시간인 3:32분이 되려면 이제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눈을 붙여보지만 잠이 안온다. 친구녀석을 쓱 살펴봤더니 이녀석도 분명 눈은 감고 있지만 잠을 자고 있지는 않는것 같았다. 이런데서는 정말 딥슬립을 해줘야 오늘 산행에 무리가 없을텐데...
뜬눈을 지샌 마지막 1시간. 뜬눈 뒤에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방송이 들려오지 시작한다
"잠시후면 구례구, 구례구 역에 도착합니다. 잊으신 물건이 없이....."
어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우린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구례구역에 내리자 마자 버스를 타기 위해 맨 앞 객차로 이동해서 내리고, 구례구에서 택시 승객을 호객하는 기사아저씨 사이로 보이는 구례구 버스를 타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일단 구례군까지 가는 버스의 비용은 1000원, 2년 전에 이곳에 왔을때랑 변함이 없다.
더군다나 아저씨의 인상이 참 좋았다. 새벽에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저씨!
잠시 친구와 곰곰히 생각하다 머리가 아파 도저히 화엄사에서 벽소령까지는 갈 수 없겠다. 그래서 절충방안이 화엄사는 새벽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풍경으 즐길 수 없고 시간에 허덕여 빨리 산행을 해야 하니 컨디션 상 성삼재에 내리자는 결론을 내렸다.
버스는 사람을 가득 싣고 구례군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버스안엔 가슴이 차오를 것 같이 산행을 기대하는 사람. 집으로 가는 것 같은 현지 주민등 다양했고 다들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처럼 얼굴색이 모두 밝다. 차는 어둠을 걷어내고 이내 버스터미널 도착했고 04:00시 까지 화장실도 다녀오고 주린 배도 채우라고 넉넉한 시간을 준다.
대부분의 산행객은 터미널 안에 있는 오뎅을 먹으면서 속을 달래고 우리는 조금 떨어진 편의점으로 가서 갑갑한 머리를 달래줄 커피와 조그마한 주먹밥을 먹었다. 그래도 먹으니까 조금은 머리가 안정되는 것 같다.
그 후 구례 터미널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싣고 성삼재로 출발한다.
굽이.
굽이..
도로를 돌고 돌아 성삼재를 향해 끝없이 올라간다.
차는 바퀴를 돌려 길을 가는 것 같지만 난 왠지 버스가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 산행에 부여한 의미도 컸고 그만큼 많은 기대를 가졌기 때문일까. 머리는 살짝 아팠지만 지리산의 새파란 공기가 너무나 기대된다.
지리산으로 올라가는 버스는 화엄사에서 승객 한명을 내려주고 성삼재에 도착했다. 화엄사에 내리는 아저씨 한분을 우리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 하던 찰나 순식간에 성삼재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 오는 추가 차비 3200원을 내고 동시에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시라는 덕담을 받고 하차했다.
내가 오르는 이 산을 난 '산행' 한다고 표현해야 하나 아님, '입산'한다고 표현해야 하나?
산행은 산을 오르는 것이고 입산은 산에 폭 안긴다는 뜻일거라....
왠지 내 머리속에선 "꽤 설득력 있네" 하고 있다.
앞이 어슴푸레 보여 랜턴이 필요없이 우리는 잘 닦여진 도로를 조용히 올라갔다. 다른 산악회는 시간을 두고 가려는것 같았고 우리 둘은 그 사이 조용한 산을 즐길 수 있겠다 싶어 출발을 빨리했다.
그리고 서서히 밝아오는 지리산.
우리는 정말 멋진 풍경을 마주하게 됐다.
잘 닦여진 길, 사람들은 노고단을 빨리 가기 위해 경사 높은 지름길을 선택했고
우리는 경치를 즐기기 위해 완만한 길을 택했다. 그 덕분에 조용하게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산 소리가 끝내준다.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에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없었고 그저 탄성만이 나올 뿐이었다.
역시 잘왔다 싶은 풍경, 그리고 산행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
잠시동안의 산을 구경하고 나서 다시 길을 나서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멀리 노고단 대피소가 보인다. 사람들의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오는 것으로 봐서는 밥을 먹고 이제 출발하려는 사람이 꽤 많은것 같다.
우리도 이곳에서 잠시 배낭을 내리고 취사를 시작했다.
취사를 준비하는 도중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아보일 수가 없었다. 깔깔 거리면서 사진을 찍고 고된 산행이 될 것이 자명한데도 소풍 온 것 처럼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다.
우리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땐 그런 표정 들이겠지?
물이 풍부한 노고단 대피소에서의 된장질
오늘의 테마는 "프랑스 몽블랑에서의 스프 퐁듀 -_-"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는 전화와 멀티문자로 인증사진을 보내고 우리는 된장질을 시작했다. 쨈을 모닝빵에 묻혀서 스프에 찍어먹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만 그러고 있지 다들 밥을 먹거나 라면을 먹거나 하는데 우리는 위에 자극적이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굉장한 된장질을 자행했다. 옆 자리는 이 근처에서 체험학습을 하기 위해 온 듯한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 학생들은 자기들 물을 끓이는 동안 우리의 행각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무료하기도 하고 우리의 행각에서 조금이나마 시선을 피하게 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고등학생 인가봐요?"
그 학생 "네"
참 무뚝뚝하다.
이래저래 말하보니 그 학생들은 역시나 체험학습을 왔고(목요일에!? 세상 참 좋아졌다~)
한 반에도 체험학습을 여러가지 선택할 수 있어 산을 오기도 하고 강을 가기도 하고 팀마다 다른것 같다. 그네들은 산을 온 팀들이었다.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자 우리는 나머지를 싹싹 긁어먹고 녹차를 끓여먹는 여유까지 보이다가 자리를 학생들에게 내주었다. 녹차까지 끓여먹고 물을 살짝 적시려는데 취수장이 참 많이 더럽다. 라면 면발이 불어서 배수구를 막고 있고..
산에서 취사를 하는 기본이 음식물 남기지 않고 다 먹고 헹궈내는 대는 최소한의 물을 써야 하거늘 그것도 그거지만 어떤 양심없는 양반이 그냥 음식물 남은걸 저기다 부어 버렸을까.
씁슬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는 씁슬함을 뒤로 하고 배낭을 짊어지자 마자 바로 노고단을 향해서 갔다.
사람들이 듬성듬성 가다 보니 이제 슬슬 마주치는 사람도 적어져 가고 있다.
조금만 오르니 멀리 보이는 노고단. 따스한 햇빛이 비추고 파란 하늘에 절경이 따로 없다.
노고단의 절경
노고단에 오니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저 멀리서는 산행객들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는데 쉬고 있는 동안 우리를 알아보는 아저씨 한분이 나타났다.
"어? 아까 기차에서 봤던 학생들이네?"
아저씨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도 쉬고 있다가 아저씨 얼굴을 잘 살펴보니 아까 화엄사에서 내렸던 용감한 1인이었다.
"아저씨? 아까 화엄사에서 올라오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이렇게 묻자 아저씨는 내리자마자 쉼없이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했다.(서울의 높은 산을 하루에 타는 프로젝트를 위해 그렇게 산행연습을 한다고 했다)그 아저씨 말고도 우리보다 한타임 기차를 빨리 타서 화엄사부터 산행한 아저씨들이 꽤 많았다.
아저씨는 지리산 국립공원은 좋은데 안내 표지판 보수할게 너무나 많고 제대로 안내되있는 곳이 별로 없노라며 바쁜 산행에도 일일히 체크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노고단에서 지반평탄화를 하고 있던 직원을 만나 이것저것 건의하고 있었다. 화엄사에서 올라오면서 발견했던 클레임에 대해서 말이다.
아저씨는 오늘 세석평전까지 간다고 하셨는데 가실 수 있을까? 우리가 먼저 산행을 떠났는데 아저씨의 모습은 당분간 보이지 않았다.
산행의 즐거움은 자연의 소리를 듣고 멋진 경치를 감상하는 것에도 있지만 사람의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발견하는 것에 그 즐거움이 또 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며 "수고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라며 기를 불어넣어주는 덕담 한마디야 말로 각박한 현대사회에서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었으니까.
우리는 노루목을 지나 반야봉을 패스해버리고 충청, 전라, 경상북도의 경계가 지나간다는 삼도봉까지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과 덕담을 나눴고 인사를 했으며 서로의 얼굴들을 엎치락 뒤치락 하며 익숙히 만들었다.
여기가 바로 삼도봉. 저 사진에는 내 기가막힌 복장을 여실히 드러내구 있구나아.
지리산을 종주하면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시시때때 달라지는 풍경과 표지판을 보며
성취감에 젖어 이내 다시 힘을 내게 된다.
드디어 연하천에 도착했다!!!!
그렇게 힘을 내고 또 내서 걸어가니 어느새 연하천에 도착했다. 사실 아침에 많이 먹고 간게 아니라서 허기져있었는데 사막에 오아시스 만난거 같이 연하천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연하천에는 정오라서 그런지 역시나 좁은 공간에 취사객이 많았다. 2년만에 다시 찾은 연하천은 화장실도 많이 정비되었고 그사이 많이 변했다. 연하천 사무소 직원이 그렇게 불친절했다는데 그분은 징하게도 여전했다. (이거 좀 고쳐줘야 될텐데 산행객들 사이서도 말이 많더라, 공원에서 직영으로 관리하는게 아닌 개인 소유기 때문에)
어쨌든 우리는 취사 자리를 엿보다가 자리가 나서 후다닥 자리를 점유하고 앉아 라면을 끓였다. 어제는 분명 계획상에 우동이 본 메뉴였는데 배가 너무 고파 라면에 밥을 끓여 먹기로 해 계획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지만 그 선택은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한켠으론 역시 부모의 말이 진리라는 생각도 했다. 조금 더 먹을걸 풍족하게 싸올껄 하는 생각을
옆자리에서 고기 궈먹는 아저씨들때매 하게 되었다.
내 다음엔 꼭 삼겹살을 공수해오리라~~~(-_-+)
라면을 헐레벌떡 먹고 있으니 저멀리서 공원의 보수를 신경써오던 아까 그 아저씨를 만났다. 우연찮게 만나 아저씨 이야기를 듣는데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드셨단다. 햇반도 사오셨는데 연하천에서는 데워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것 같아서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그냥 우리가 다 먹은 그릇만 주면 그걸로 혼자 라면 끓이심 된다고 하셨는데 못내 그건 도리가 아니라서 같이 드시자 했는데 완강히 사양하시길래 어쩔 수 없이 쓰던 그릇을 드렸다. 라면도 사실 더 사지 않아도 우리에게 한개 남는다고 했는데도 그것도 불편하다시단다.
우리도 약간 죄송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코펠, 버너로 맛있게 라면 해드시는거 보니 다행이다.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살짝 헹궈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짐을 쌌다. 우리와 합석던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어짜피 벽소령까지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무리해서 서두르지 말라 했는데 우리는 일찍 도착해서 부족한 잠을 몰아 자야기 때문에 먹자 마자 출발했다. 아저씨께는 나중에 또 만나길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시 힘을 내서 벽소령으로 가는 길.
한 10분쯤 갔을까 저 멀리서 붕붕붕 거리며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친구는 그걸 보더니 그냥 헬리콥터가 아니고 119 헬리콥터라는데 이 근처에 무슨일이 났다 싶었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니 갑자기 우리 근처로 헬리콥터가 고도를 낮추는게 아닌가?
그래서 뭐지 싶어서 더 내려갔더니 저 멀리 사람들이 찢어진 옷을 흔들며 구조요청을 하고 있고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 가까이 가보니 어떤 사람이 입에 거품을 물고 누어있다. 헬리콥터의 바람때문에 계속 길을 가지 못하다가 얼핏 들었는데 무엇을 잘못 먹었다는 것이다. 여차하면 늦을 수 있다고 하는 것 보니 생명이 많이 위독한거 같다.
응?
근데 가만?
환자를 보니 익숙한 얼굴이다.
알고보니 아까 우리가 삼도봉에서 쉬고 있을때 저 멀리서 봉지에 솔잎을 따고 살짝살짝 맛보던 그분이 아닌가? 무엇을 잘못드셔서 저렇게 되셨나 안타깝기도 하고 아무일 없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길을 계속 가야만 했다.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1시간 30분의 거리?
계속 가다 보니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다. 부족한 잠 채우기 위해 금방 가자라는 생각이 안일함을 불러왔는지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벽소령 산장이여~ 저멀리 산장은 산에 걸려 눈에 보이는데 우리는 계속 봉우리를 넘고 또 넘고 있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슬슬 다리가 아파올 무렵(친구는 무지 아팠단다..) 드디어 벽소령에 도착하게 되었다.
친구의 앓는 소리가 그제서야 끝이 났고 나도 발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리고 목이 말라 물을 뜨려는데, 친구는 도저히 걸을 수 없고 그나마 내가 체력이 남아 내려간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식수장까지 무려 100m나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심연의 숲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오는데 친구에게 씩씩대며 담에 니가 가라며 자살할 뻔했다는 농을 섞어 이야기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잠이 몰려온다. 벽소령 직원에게 물어보니 중앙홀은 개방되어 있다고 들어가서 쉬어도 된단다.
다행이다!!!
꿈에 그리던 벽소령 대피소다
잠깐 햇빛에 여독을 풀고 벤치에 앉아있다 들어가려던 찰나 우리는 아까 그 아저씨와 다시 재회했고 아저씨는 우리에게 세석 대피소까지 가자시며 우리를 구슬렸지만 우리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넘어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2007년에 거꾸로 내가 같이 산행하던 누나가 여기 머문다는걸 세석까지 가자고 우겼던 기억이 나 살짝 웃음이 났다.
죄송하지만 우리의 컨디션때문에 아저씨에게 안전한 산행을 빌고 중앙홀에 여독을 풀었다. 산장이 다소 높은 지대에 있어 추웠지만 살짝 눈 붙일만 했다. 눈을 한 2시간 정도 붙이고 깨어나니 살짝 어둑어둑해지고 우리가 있던 중앙홀에는 사람이 많아졌다.
내가 눈을 뜨고 두리번대니 앞에 있던 아저씨 두분께서 우리를 기차에서부터 눈여겨 봤단다 이유인 즉슨 역시나 복장때문이었는데 당신들은 이전 산행때 그렇게 입고 와서 크게 낭패 봤다며 초보 산행자인 줄 알았단다. 그러나 난 이 복장으로 지리산을 왕래한게 크게 따지면 꽤 된다고 말했다. 사실 복장을 잘 챙겨왔어야 하는데, 참 계속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구만.
저녁이 되니까 살짝 추워진다.
가방을 푸니 고이 모셔놨던 김치가 있다. 이제 내 실력을 발휘할 차례
남들 다 고기 궈먹는데 우리는 비장의 무기 김치찌게를 요리한다.
쨘~ 난 김치찌게 요리사.
밑국물을 내고, 김치를 참치기름에 볶고 참치와 스팸을 넣고 저은다음 물을 적당히 채워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그 다음 맛을 보고 후추와 소금, 고춧가루로 칼칼한 맛을 살려되면 끝.
서로 한입 먹어보더니
우왁 우왁!! 하면서 탄성을 내지른다. 살짝 쌀쌀한 날씨었지만 김치찌게와 밥 한공기, 갖은 반찬과 우리를 후끈 달아오르게 해줄 막걸리가 있었기에 잘 버틸 수 있었다.
성공적인 하루를 자축하면서 건배를 하고 나니 취기가 슬슬 올라온다. 그리고 졸려온다.
밥을 먹자마자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 체크인과 동시에 훅 하고 뻗어버렸다.
분명 벽소령에서 보는 보름달이 이쁘다고 해서 저녁에 나온다고 했었는데(산행일이 우연하게 14-15일 사이여서 볼 수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그걸 잊고 취기에 피로까지 겹쳐 잠이 확 와버린거다. 그러다가 소변이 마려워 다시 깼고 밖을 나서보니
보름달은 커녕 구름만이 빽빽하더라. 내일은 구름이 좀 많은 흐린 날씨 일거 같다.
내일도 친구가 잘 버텨줘야 할텐데.. 걱정이 된다.
그날 밤 산장에 있는 개미들에게 쉴새 없이 뜯기다가 그 공격에도 아랑곳않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어느새 깊이 잠이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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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정하고 싶다면 산으로 떠나라(준비편) - 2번째 지리산 종주
2007년 전국일주, 그 당시 계획했던 루트의 마지막 행선지로 전국일주를 마무리 짓기 위해 지리산으로 가서 큰 자신감을 찾았었다.
2008년 지리산에 위치했던 화엄사 템플스테이. 그곳에서 입대하기전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었고,
2010년 지금. 전역후 다시 그때의 자신감 넘쳤던 나를 찾기 위해 떠났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약 2년. 정확히는 1년 11개월의 군생활이 끝났다. 끝났다라고 귀결하기 보단 끝나버렸다고 표현하는게 맞으려나?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제일 치열하기도 했고 제일 슬퍼하기도 했던 미련 넘쳤던 군생활이 끝나고 거의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했다. 어쩌면 그 많은 시간동안
나와 사회는 심하게 분리되어 있었고 내 눈앞에서 보이는 것은 국방색이 난무하는 군복 뿐이었을 뿐 지금의 사회처럼 총천연색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역을 하면 "사회 적응"이라는 명목으로 따로 적응기를 두나보다.
그렇게 칩거를 하고 있던 나를 끄집어 낸건 순전히 친구의 몫. 예전부터 지리산 종주를 하자고 부단히도 약속에 재약속을 거듭했던 친구가 전역한 4월에도
"언제가냐?" 5월이 되서도 "우리 지리산 가긴 가는거냐?" 하고 인사대신 이런 말을 자연스레 주고 받게 되었고 한창 칩거하고 있던 도중 삘이 받아버린 나는
친구에게 갑작스레 통보해버린다.
"그래 가자 이놈아! 5월 둘째주다."
5월 둘째주의 산행의 결정은 갑작스레 1주전에 이루어지게 되었고 산행을 준비하는 우리에겐 크나큰 과제를 안겨줬다.
큰 과제는 바로 "예약". 우리가 잡으려던 날짜는 너무나 성수기였고 그 많은 대피소는 모두 만석이었다.
그래도 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야, 잘 봐둬 내가 예약에 있어서는 얼마나 끈질긴지 보여줄테니까!"
하고 호언장담했다.
그 담날부터 5일간의 예약을 향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친구는 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휴학중에다가 안식년제(라고 주장하지만 백수상태)를 시행하고 있던 나의 몫은 자연스레 예약이 되었고 하루에 한번 아침 10시, 그리고 12시
2시 계속해서 예약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렸고 자기 전에도 확인할 수 있게 아이폰에 즐겨찾기를, 구글링을 통해서 그날 예약자들을 검색해봤다. 그러던 중 한 산악회
홈페이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어떤 아저씨 한분이 1명이서 4명분을 예약하고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하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려 리플을 보았더니 동행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 찰나 내 머리속에 스쳐갔던 생각.
'그래 예약이 안되면 이 아저씨를 접촉해봐야 겠구나, 그리고 혹여나 이 아저씨가 취소를 하게 되면 적어도 세자리는 나오겠구나, 4일전에 이 아저씨가 취소를 하면 100프로 환불이니까 그때 쯤 자리가 나겠구나'
하는 논리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이것만 봐도 참.. 난 정말 징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이 여행을 책임져야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노력은 필수불가결이었다. 해외여행에서도 난 악착같이 여행했으니까, 남들이 안된다고 했으면 꼭 해버렸으니까.
그래도 저런 생각 저편에는 '비박을 감행할 수도 있을꺼야'라는 생각도 있어 인터넷에서 비박에 대한 글을 검색하고 관련사진을 보자마자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못혀! 난 때려죽어도 이짓은 못혀!
출처 : 한겨레 블로그 ' 지리산 새벽별 '
"말이 안돼 이건 ...... 이것까진......전역한지 얼마 안됐는데 저런 쌩혹한기 훈련 같은건 하고 싶지 않아!!! 안돼!!! 반드시 예약하고 말테다!!!!!!!!"
오히려 그 저편의 생각이 예약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인 집착을 가능케 만들었다.
출발하기 4일전. 오전 10시 눈을 뜨자마자 무한 새로고침을 하던 도중 드디어 첫번째 목표 산장이었던 벽소령 대피소가 예약 공석이 났다. 핸드폰에서 재빨리 확인 후 컴퓨터에 앉아서 주저없이 결재를 눌렀다.
그리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벽소령 정복했다. 이제 장터목만이 남았다 두고봐라 내가 해낸다. 반드시"
이랬더니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무서운 놈 ㅋㅋ"
출발 4일전이라 왠만하면 공석이 제법 나올줄 알았는데 역시 주말이라서 쉽게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쥐어짰지만 공석은 나오지 않았다.(아마 내가 밥먹을때 나왔을런지도?)
그리고 다음날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습관처럼 다시 핸드폰을 켰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왔싸!(아싸!~의 묵직한 표현) 자리났다!"
무려 5개의 자리가 났다. 바로 예약하고 결제하니 바로 대기도 꽉 들어차버린 장터목 대피소. 대단했다!
결국 미션은 이렇게 성공했고 이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산에서 무엇을 먹으냐 하는 것이였다. 친구와 나 둘중 하나는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인데 산에서 먹든 어디서 먹든 먹는거 하나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배낭이 무겁지 않게 친구와 만나서 적정한 장을 보고 간소한 코펠, 버너를 구비했다.
애썼다 증말~
우리가 2박 3일 동안 여행할 코스는 다음과 같다.(친구의 처녀산행으로 기존 1박 2일을 2박 3일로 조정했다)
구례 화엄사(새벽 4:30분 출발) - 성삼재 - 노고단(아침식사) - 연하천(점심식사) - 벽소령(저녁식사,아침식사 1박) - 세석(점심식사) - 장터목(저녁식사,2박) - 새벽산행 - 천왕봉 - 중산리로 하산
그리고 식단표는 다음과 같다.
아침 : 빵, 소고기 스프, 잼(모닝빵을 소고기 스프에 찍어먹고 잼발라 먹는 프랑스식 허세)
친구의 반응 - "우리 ㅋㅋㅋㅋㅋ 몽블랑 온것도 아니고 이게 뭔 허세드립이야!!! ㅋㅋ"
점심 : 가쓰오 우동 (햇빛을 받으며 먹는 일본식 허세)
친구의 반응 - "요고 좀 맘에 든다!"
저녁 : 김치참치부대찌게, 밥, 막걸리
친구의 반응 - "이날이 젤 맛있겠네"
그리고 2일차
아침 : 빵 소고기 스프, 잼(...... 첫날과 같다)
점심 : 신라면, 밥
저녁 : 침치참치부대찌게, 밥, 소주 1병
다음날 하산할때 까지는 굶기!
이런식의 식단표다. 이 식단표는 후에 아주 철저히 바뀌어 버린다. 우리는 산을 타면 탈수록 굶주린 하이에나가 되버렸다.(하하)
이렇게 정하고 우리는 수원에서 구례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때의 우리 복장, 두둥!
친구는 제법 산악인의 면모를 갖추려는 듯 등산복을 말끔히 입고왔는 반면, 나는 마치 장터목에서 물건팔러 나온 사람같은 동네 뒷산 마실 나온 차림이다.
나에게 대한 저런 찬사는 이미 2007년 지리산을 등산할 당시 나와 같이 산행한 아저씨가 했던 말이다. "학생은 무슨 장터목에 물건팔러 온것 같어"
그때의 복장을 해명하자면 어렸을때부터 우리 가족의 산을 향한 집념이 아들을 철저한 산꾼으로 만들어버렸고 이제 뭐 등산은 거의 생활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복장으로 산타고 싶을 뿐이다. 발 디딜때는 다 아니깐(우리 부모님께서는 거의 1주일에 한번 등산을 가신다. 토요일은 치악산 일요일은 관악산 이런식이다)
그 복장 덕택에 기차를 타는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분이었는데 대부분의 객차를 산꾼들이 점유해버려 우리를 초보 산행자라고 여긴것 같았다. 속으로 '분명 산을 가는 애들인건 같은데 쟤는 왜 복장이 저러지 고생 꽤나 하겠군' 라고 생각했을거다.
물론 산행의 복장에는 한창 잘못 된게 맞지만! 그날따라 편하게 산을 마주하고 싶었을 뿐이다.
초보이거나, 그래도 산을 탄사람이라도 절대 따라하지 말기!
정말 산을 좋아한다면 산행에 필요한 복장은 기본으로 해야한다!
갑작스런 출발에 복장이 서툴렀다고 변명해두자.
여튼 맥주를 한캔씩 따고 우리는 성공적인 종주를 위해 건배를 했다.
2박 3일 종주 그래 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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